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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도둑 새우깡 도둑

작성자

김숙자(경기도 시흥시 신천동)

등록일
2003.05.12
조회
3,081

 1970년대 초의 일이다. 옆집 향분네가 토끼 한쌍을 잃어버렸다며 우릴 범인으로 지목했다. 목에 걸린 가시만큼 참기 어려운 도둑 누명! 어른들은 물론 언니와 나도 향분이와 척졌다. 언니는 5학년, 나는 3학년, 향분 엄마는 수다쟁이에다 구두쇠. 몇날의 악다구니로 동네가 들썩였다. 여론도 수박 쪼개듯 양분됐다. 설마 우리가 남의 토끼 손댔으랴 하는 편과, 견물생심이니 그럴 수도 있다는 편으로.
 안개와 누명은 벗겨지게 마련인가. 달포 후, 숨바꼭질하던 꼬마들의 '귀신이다!'라는 비명에 오른들이 향분네 건조실을 살피다가 박장대소, 귀신은커녕 새끼들 딸린 토끼 한쌍! 잃어버렸다던 그 토끼들이 건조실로 숨어들어 건초를 먹어가며 새끼까지 낳았던 것이다.
 누명 씌웠던 향분 엄마는 떡심이 풀려 불가뭄의 모종처럼 풀이 팍 죽고, 그 불똥이 딸에게 튀어 향분이도 또래들로부터 따돌림감이 되었다.

 

 악머구리 끓듯, 애들이 우리 집에서만 비석치기,자치기,숨바꼭질, 고무줄 놀이로 늘 왁자지껄. 외톨이로 겉도는 향분이는 돌담 너머로 흘깃거리며 울상이고 코가 납작해진 향분 엄마는 눈에 쌍심지를 켰다.
 향분 엄마는, 나와 언니를 구슬리지 않고는 딸이 배돌림 신세를 면키 어려움을 간파했다. 하루는 언니와 내게 뭘 내밀었다. 새우깡 한 봉!
 '향분이가 무슨 죄냐, 같이 좀 놀아다오.'
 이때 가게집에 첫선을 보인 새우깡은, 주전부리라야 개떡,엿,튀밥이 고작이던 두메에선 그림의 떡이었다. 가겟집에 눈요기로나 남아있을 새우깡이 손에 척 들어오다니, 그것도 자기 딸에게도 사줄까 말까 할 천하의 구두쇠로부터.


 그날 밤, 언니와 난 그 새우깡으로 잠을 설쳤다. 처음 맛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건만, 원수가 사준거라서 양심에 콕 찔렸다. 한동안 새우깡 봉지만 만지작만지작. 에라, 기어이 양심의 마지노선인 세개씩 맛보고 그 고소함에 진저리쳤다. 우린 늦잠에 빠졌다. 엄마에겐 비밀이라는 차돌 같은 약속과 함께.
 '얘들아, 아침 먹어.' 꿈결인 듯 문 열어제치는 엄마의 목소리. 아뿔싸. 잠버릇 고약한 내 발길질에 쏟아지고 뭉개진 새우깡! '어디서 난 거냐?' 이실직고 할 수밖에.
 '뭐! 향분이네가 줬다고?' 엄마는 새우깡을 그러모아 마당에다 흩뿌리고는 향분네를 향해 퍼부으셨다.
 '언젠 도둑 딸이라더니 이젠 과자로 구워삶아?'
 그 아깝디 아까운 새우깡은 운수대통한 멍멍이 몫이 되었고, 운수불길한 우린 쓸개 빠진 놈들이라고 댑싸리비 세례만 흠씬 받았다.

 

 다음날도 향분 엄마는 한 봉을 쓱 안기며 눙쳤다. '요번엔 엄마한테 들키지 마. 참, 향분이랑 언제 놀아줄거냐?','그깟 한두 봉으로 성에 차요?','시쁘냐? 다음부턴 두 봉씩이다!'
 향분 엄마는 우리가 새우깡만 날름 받아먹고 딸과 놀아줄 기미는 좀체 없자 건몸달았다. 우리의 앵돌아진 분이 확 풀려 딸과 놀 때까지, 최상의 뇌물인 새우깡을 두 봉씩 사주겠다나, 오기로라도. 음, 외동딸 향분이 때문에 안달복달하는 약점을 노려 새우깡이나 한껏 타내자. 도둑 누명의 보상으로.
 호랑이는 날개가 없듯, 전답농사는 으뜸이되 자식농사는 골찌인 향분엄마. 집집이 수남매씩으로 바글거리건만, 유독 향분네만 무남독녀! 금지옥엽 그 향분이가 자기로 인해 따돌림 당하니, 천하의 구두쇠라도 새우깡쯤 대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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