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공모 우수작새우깡과 함께 한 사연을 올려주세요!

비밀이 화석처럼 박혀 있는 새우깡

작성자
이석례(충북 진천군 초평면)
등록일
2003.08.25
조회
3,265

“보이쇼! 잠깐 게 서 보이쇼!”
조그마한 구멍가게에서 나와 바로 옆을 흐르는 냇물 언덕을 걸어오는데 등뒤에서 몸이 다소 불편하신 아저씨가 소리를 질렀다. 그 아저씨를 본 순간 어머니께서는 돌부리에 걸리셨는지, 풀잎에 채이셨는지 갑자기 땅에 쓰러지셨다. 그러면서 장본 보따리에서 과자 봉지가 쏟아져 데구르르 굴러 망초꽃 덤불 사이로 숨겨졌다. 아주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라 어린 나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께서는 기운이 없으신지 그냥 흙바닥에 엉거주춤 앉아 계셨다. 아저씨는 헐레벌떡 뛰어나오시더니 다짜고짜 어머니 짐보따리를 빼앗으셨다. 뭔가 계산이 틀렸다는 것이다. 아저씨와 어머니는 한동안 옥신각신 하셨으나 아저씨가 뭔가를 착각하신 듯 불만스레 혼잣말을 하시며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시장하시어 맥을 잃고 선뜻 일어나시지를 않으셨다.


어머니와 나는 거의 저녁 무렵까지 아무 것도 먹지를 못했다. 어머니께서는 푸성귀를 장에 가져와 겨우 다 팔고 이것 저것을 사 가지고 어린 나를 앞세워 집으로 돌아가시는 길이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그 아저씨 가게에서 돈을 내지 않고 ‘새우깡 한 봉지’를 훔쳐 보따리에 쑤셔넣으신 것이다. 쪼들리는 살림에 꼭 필요한 필수품도 겨우 산 처지에 감히 과자를 살 여유는 없었고 어머니께서는 어린 나를 위해 새우깡 한 봉지를 도둑질하셨는데 아저씨가 늦게 그걸 눈치채고 잡으러 오신 것이다. 어머니께서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한참 후 그 꽃덤불 밑에 굴러가 있던 새우깡을 조심조심 꺼내오시더니 부랴부랴 앞서 걸으셨다.


“엄마, 같이 가이, 엄마 같이 가이.”
내가 소리를 지르며, 울며 쫓아가도 뒤도 돌아보지 않으셨다. 그땐 몰랐지만 20여 년이 넘은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께서는 아마도 눈물을 흘리셨던 것 같다. 내가 겨우겨우 어머니를 따라 잡자 어머니께서는 새우깡 봉지를 조심스레 뜯어서 내 두 손에 꼬옥 쥐어 주셨다. 그때 어머니의 걸음을 따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손에 들려진 새우깡을 받아먹기 위해서였음을 지금도 기억한다.


어린 내게 그 새우깡은 정말 침이 녹는 고소한 맛이었다. 새우깡 한 개를 입에 넣고 녹을 때까지 오래오래 공들여 가며 먹었다. 그러나 새우깡은 그렇게 먹는 것이 아니다. 두세 개쯤 입에 넣고 아삭아삭 그 소리까지 음미하며 먹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때 어린 나는 어머니께 새우깡 한 개를 드린 기억이 없다. 나 혼자 느릿느릿 최대한 느리게 걸으면서 그 새우깡 한 봉지를 다 먹고 봉지를 꼭꼭 접어 주머니에 넣고 입을 쓱쓱 닦고 집으로 들어갔다. 오빠, 언니가 새우깡 봉지라도 낌새를 채면 난리가 날 것을 어린 나이지만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께서 새우깡 한 봉지를 훔쳐 허기에 지친 내 배를 채워주셨고 그것은 그후 나와 어머니만 아는 비밀이 되었다. 지금도 그때의 아픈 기억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내 마음 가운데 화석처럼 박혀 있다.


나는 혼자 어머니 무덤에 갈 때는 꼭 새우깡 과자를 사 갖고 간다. 그리고 소주 한 병과 새우깡을 놓고 어머니와의 그때 일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어떤 때는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6·25참전 용사 미망인으로 억척스레 살다가신 어머니. 하루하루 살기 어려운 생활에 정직과 성실을 당신의 자식 교육 지침으로 삼으신 어머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