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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꿍'이 '깡'이 될 때까지

작성자
김완신(서울시 은평구 갈현1동)
등록일
2003.09.02
조회
2,043

"꿍, 꿍"
"응? 끙, 꿍? 꿍이 뭐야?"
이제 막 말을 하기 시작한 아들 녀석의 난데없는 꿍소리에 귀가 솔깃해진건 낡은 앨범속 사진들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스스로에게도 낯선 누구 엄마, 누구 아내이기 이전의 '나'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물증이 되어버린 지난 사진들을 돌아보며 새로운 감회에 젖어들고 있을 즈음, 팔에 매달린 채 쉬지 않고 '꿍'을 외쳐대는 아이의 눈망울에 조급함이 맺혀있어다. "어마, 꿍, 더대요, 바이빠이."


나는 본능적인 순발력과 언어적 기지를 발휘하여 "엄마, 주세요, 빨리"라는 것까진 훌륭하게 짜맞추었는데, 도무지 풀리지 않는 건 바로 문제의 '꿍'이었다. 꿍! 달라는 걸 보니 무슨 물건인 것 같은데 꿍 소리가 나는 건 아닐테고, 할 수 없이 아이 주변에 흩어진 장난감들을 하나씩 건네보았지만, 이도저도 모두 아니라는 통에 답답하기는 아이도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꿍, 꿍, 더대요, 바이빠이"
"엄마가 꿍이 뭔지 잘 모르겠거든, 네가 한 번 찾아봐, 응? 어떤 거지?" 의회로 해답은 간단했다. 아이는 방안 가득 널린 물건들 중에서 오래된 기억 하나를 집어들었다.
아이가 집은 것은  얼마 전 돌아가신 아버님이 남기신 유일한 사진 한 장. 일을 마치고 돌아와 언제나처럼 소주 반병을 벗삼아 평상에 앉아계시던 그 모습! 그 속에 '꿍'이 있었다.    "으응, 이거 할아버지 드시는 거, 이 새우깡 달라고?"
신대륙 발견의 감격과 기쁨인들 이에 비할 것인가! 그제서야 아이의 얼굴엔 안도와 기대의 미소가 환하게 번졌다.


소주 반병과 새우깡 한 봉지. 당신을 닮은 듯 지친 하루의 끝자락에 앉으신 초로의 술상은 언제나 그렇게 소박하였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삶의 고단함을 달래던 자리에 언제나 친구처럼 놓여졌던 새우깡의 의미를 아이는 알고 있을지…. 평생 힘든 일만 하시다 가시는 길조차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 주무시듯 깨지 않으시던 나의 시아버님. 시댁으로 처음 인사하러 가던 날, 어색하고 창피하다며 도망치듯 나서시다 어머님께 손목 잡혀 들어오시던 그 분.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 못하시고 이름 한번 큰소리로 불러 주시지 않으시던 그 아버님이 사진 속에 그대로 살아계셨다. 돌아가시기 얼마전, 아마도 당신이 가실 먼 길을 예감이라도 하듯, 내게 남기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어버린 한 마디가 아직도 가슴 속에 메아리친다.


"며느리!" 조금은 상기된 듯, 조금은 서글픈 듯 충혈된 눈으로 바라보시며 건네시던 그 말씀. '아가'라든가, '얘야', '누구 에미야'도 아닌 '며느리'로 불러놓으시곤 또다시 아무 말씀 못하시며 머쓱해하시던 그 모습이 참 따뜻하였는데, 너무 놀라고 당황스러워 미처 대답조차 못하고 멍했던 그날이 마지막이 될 줄이야…. "예, 아버님"하고 다정스레 불러라도 드렸으면, 환하게 웃으며 눈맞춤이라도 제대로 해드렸으면 가시는 길이 조금은 덜 외롭지 않으셨을까. 가슴속에 커다란 멍울 하나가 잡히는 듯하다. 그러고보니 아이의 아빠를 만나 처음 산에 가던 날, 힘들어할 때마나 하나씩 건네주던 것도 바로 꿍, 새우깡이었다. 소금기가 있어 쉬 지치지 않을테니 한번에 먹지말고 조금씩 입에 넣고 녹이듯 빨아먹으라며 할머니의 마르지 않는 쌈지인 양 하나씩 꺼내주던 새우깡은 따뜻한 이의 포근한 마음자리 그대로였다. 몇 개 되지도 않는 이로 바스락거리며 제대로 맛을 음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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